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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모래 백사장에 조선소 건립한 정주영 회장 일화

울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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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 규정 네 확인했습니다.

다시 조명 받고 있는 고 정주영 회장

 

지도와 백사장 사진 한장으로 조선소 건립한 일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낸다. 의심하면 의심하는 만큼 밖에는 못하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게 1971년 가을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전년에 수립한 ‘대형조선소 사업계획’을 완수하기 위해선 6300만달러라는 막대한 자금 조달을 선결해야 했다.

 이 중 4300만달러는 해외에서 끌어와야 했지만, 개발도상국 건설기업 대표에게 국제 금융시장의 벽은 높았다.

 현대가 기술집약적인 조선업에 진출해 경쟁력 있는 대형 선박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차관을 구하기 위해 정주영 회장은 백방으로 뛰었다.

 영국 런던에서 선박 컨설턴트 회사 애플도어의 롱바톰 회장을 만나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내밀며 추천서를 받았고 이를 기반으로 영국 버클레이은행으로부터 차관 제공 결정을 받아냈지만, 영국 수출신용보증국의 최종 승인을 얻어내기 위해선 배를 사겠다는 선주를 찾아야 했다.

 1971년 10월, 정주영 회장은 그리스 해운재벌 조지 리바노스 회장을 스위스에서 만났다.

 조선소가 들어설 울산 미포만 백사장 사진과 유조선 설계도를 들고서 정 회장은 세계 최대 해운사로부터 유조선 2척을 수주하는 데 성공했다.

 배를 지을 독 하나 없는 상태였던지라 수주 조건은 불리했다. 국제 선가보다 16% 싼 가격으로 배를 만들 것,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원리금을 전액 변상할 것.

 공기를 단축하면 문제없다는 게 정 회장 판단이었다.

 

 조선소 기공식으로부터 2년 3개월째 되던 1974년 6월, 울산 미포만에는 길이 330m, 너비 52m, 높이 27m에 달하는 초대형 유조선 애틀랜틱 배런호의 뱃고동 소리가 울려퍼졌다.

 조선소 건설과 함께 선박 건조를 시작하는 세계 조선업 역사상 전무후무한 방법으로 조선업에 뛰어든 현대중공업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정주영 회장은 건조 기술뿐 아니라 핵심 설계 기술까지 내재화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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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하디 톰하디 Bro 포함 6명이 추천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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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닌자 24.09.04. 10:55
진짜 정주영 회장님은 배울게 많은 분이야^^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분이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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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JOHNWICK 24.09.04. 11:36
정말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이지~~

역사에 길이남을 분이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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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등 폭풍랑 24.09.04. 12:32
이런 걸 들어 보면 참 대단한 사람인 건 인정!!

시대의 걸출한 인물이네
울프신 작성자 24.09.04. 12:48
불도저 처럼 밀어붙이는 거 같지만
항상 대안을 준비하고 실행했던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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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건 24.09.04. 13:42
우리나라 역사에 그 이름이 올라갈마한... 정말 대단한 사람이고, 우리나라 발전에 큰 몫을 차지하는 업적을 이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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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24.09.04. 13:53
진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사람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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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하디 24.09.04. 14:48
정주영 회장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함
대단한 업적을 이루어낸 사람이긴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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