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베트남 장기출장 그리고 로맨스 #5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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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희녀와 헤어진뒤 택시를 타고 오는 길에 고메즈녀에게 메세지를 보냈었지만 아직 투어가 안끝나서 한창 재밌게 놀고 있는지 메세지 확인도 안한 상태였고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숙소로 돌아와 투어를 마친 고메즈녀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기나긴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고 내일부터는 다시 출근이라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 생각이었지만 막상 집에 돌아오니 목구멍이 칼칼한게 맥주가 살짝 땡기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아까 장서희녀 때문에 잔뜩 흥분했던 주니어도 욕구불만인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여자 생각이 나는게 고메즈녀가 돌아오면 빨리 하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책상에 앉아 일기도 적고 장서희녀랑 메세지도 주고받으면서 시간을 보내다 샤워를 한판 하고 나오니 그새 고메즈녀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이제 오는구나싶어 반가운 마음에 고메즈녀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투어가 생각보다 재밌었는지 잔뜩 들뜬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는데
얘길 들어보니 투어에서 한국 관광객들을 만났고 지금 걔네들이랑 맥주마시러 딴데 와있으니까 그리로 와달란 얘기였다.
순간적으로 상반된 두 생각이 교차했다. 안그래도 목이 칼칼하던 참에 잘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지금 맥주마시러 나가면 그간 고메즈녀의 스타일로 봤을때 일찍들어오긴 힘들거란 생각에 다음날 출근이 걱정되기도 했다.
잠시 머리를 굴리며 고민을 해보니 40대60 정도로 다음날 출근 걱정이 더됐고 결국 나는 고메즈녀에게 다음날 출근이라 지금 나가긴 힘들고 너도 그냥 들어오는게 어떻겠냐고 설득을 하기 시작했다.
난 나름 차분하게 설득을 했는데 고메즈녀는 들뜬 분위기의 여파인지 막무가내였다. 너무 늦게까지 있지 않을테니 나와달라는 얘길 계속했고 그것도 악먹힌다 싶었는지 자기혼자 숙소로 돌아가기 겁나니 꼭 나와달라고 징징대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이미 안 나가기로 결정을 한 상태라 고메즈녀와 나의 의견이 팽팽히 맞섰는데 쉽게 설득이 되지 않는 내가 얄미웠는지
고메즈녀는 ‘오빠 마음대로해! 난 얘네들이랑 맥주마시고 알아서 들어갈게!’란 말을 남기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고메즈녀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리니 순간적으로 욱하더라.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메즈녀가 정말 짜증난다는 생각도 들었다.
방금전까지만해도 기분 좋은 상태였는데 고메즈녀가 전화를 끊어버린 뒤론 순식간에 모든게 엉망이 되어 버렸다. 씨파! 씨파! 욕이 절로 나왔다. 별일도 아닌데 저러고 쉽게 화를 내는 고메즈녀가 짜증났고 이게 뭐하는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별일도 아니었지만 당시엔 무척 화가 났었다. 화가나서 거실을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생각을 정리하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고메즈녀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어 더 화가 났다.
이리 생각해보고 뒤집어도 생각해봐도 내가 잘못한것은 하나도 없고 이번일은 고메즈녀가 일방적으로 잘못한거 같다는 생각이 더 커져만 갔고 그럴수록 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연휴내내 잘 보내다 연휴 마지막날 이게 뭐하는짓인가라는 생각에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와 마시며 씩씩대며 한캔을 비웠다.
목구멍으로 시원한 맥주를 들이킨뒤 심호흡을 하고 나니 조금씩 진정이 되긴 했지만 여전히 고메즈녀에 대한 원망이 완벽히 안가시긴 마찬가지였다.
문득 그래도 내가 한참 오빠인데 고메즈녀에게 전화해서 화해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놈의 쫀심이 뭔지 그러기가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가 그놈의 쫀심을 버리기도 영 내키지가 않았고 결국 컴퓨터앞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별 의미없는 짓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적다만 일기를 적어보기도 했고 손 가는대로 여기저기 클릭질을 하며 뉴스를 보기도 했다.
그러다 외장하드에 있는 나짱에서 찍은 사진들을 꺼내보며 정리를 했는데 바쁘게 손을 놀려가며 사진정리를 하다보니 서서히 조금씩이지만 화가 좀 풀리기 시작했다.
고메즈녀가 처음 나짱 공항에 도착했을때 찍었던 사진들.. 미아리조트에서 식사를 기다리며 해변에 나가 찍은 사진들.. 하나둘씩 고메즈녀와 함께 했던 사진들을 보다보니 서서히 화가 풀리며 혹시나 내가 잘못한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처음 고메즈녀가 나짱에 와주었을땐 그렇게 좋았는데 내가 너무 매정하게 출근땜에 못나간다고 한건 아닐까하는 반성도 스물스물 피어 올랐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선 그놈의 쫀심 때문인지 내잘못은 조금도 없다는 고집이 아예 없는건 아니었지만 서서히 고메즈녀에게 약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맥주 한캔을 더 비우고 나니 서서히 알딸딸해지는게 기분이 좋아지며 지금이라도 고메즈녀에게 가볼까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나보겠다고 한국에서부터 와준 아가씨인데 내가 너무 모질게 했나 하는 반성이 되기도 했다.
이런 급격한 감정변화에도 불구하고 그제서라도 숙소를 나서 고메즈녀에게 달려가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오빤데 먼저 숙이고 연락하기가 마지막까지도 망설여졌다. 냉정히 봤을때 내가 잘못한것도 아닌데 먼저 연락하는게 그놈의 쫀심 때문인지 어딘지 모르게 꺼림직했다.
업앤다운을 반복하는 감정변화에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핸드폰을 손에 든채 방안 이곳저곳을 왔다갔다하며 고메즈녀에게 연락을 해볼지 말지를 망설였다.
지금이라도 고메즈녀가 먼저 연락을 해준다면 아까 일은 다 잊고 환하게 웃으며 달려나갈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먼저 전화를 해볼지 말지를 가지고 이리저리 짱구를 굴려가며 의미없는 고민을 하며 한참을 망설였다.
한참동안의 고민끝에 결국 내가 먼저 고메즈녀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마음을 정했지만 진짜 그놈의 쫀심이 뭔지 쉽게 핸드폰에 손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먼저 연락하는게 뭔가 쪽팔리는 일같고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가 거절당하면 어쩌나 하는 고민도 됐고..
처음엔 전화를 해볼 생각이었지만 다짜고짜 전화부터 하기엔 도저히 쫀심이 허락을 안해 카톡을 열어둔채 글을 썼다 지우길 수십번을 반복했다. 보낼 메세지의 내용이야 빤했지만 다 적어놓고도 마지막 전송버튼을 누르기가 그렇게 힘들수가 없었다.
그러고 수십번의 망설임을 반복하며 아까운 시간만을 낭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가 올거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걸려온 전화라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떨어뜨릴뻔 했다가 간신히 붙잡고는 확인해 보니 고메즈녀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모르긴 몰라도 난 그순간 씨익하고 미소를 짓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솔직히 고메즈녀에게 걸려온 그 전화가 너무나 반가웠다. 아직 전화를 받지도 않았음에도 내가 전화를 받으면 고메즈녀가 무슨 얘기를 할지 상상이 되기도 했고.. 난 진동음이 세번정도 울리길 기다렸다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라는 소리와 함께 전화를 받아보자 고메즈녀의 목소리가 들렸고 영상통화가 아님에도 고메즈녀의 얼굴이 바로 앞에서 바라본듯 상상이 되었다. 고메즈녀도 나와 비슷한 감정의 흐름을 겪었는지 많이 무안하고 쑥스러운듯한 목소리였다.
나: 여보세요
고메즈녀: 오빠 자?
나: 아니
고메즈녀: 그럼 뭐해?
나: 그냥 있어
십초도 안걸린 짧은 통화였지만 고메즈녀의 목소리와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 고메즈녀가 아까 일방적으로 화를 내며 전화를 끊은것에 대해 많이 미안해 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근데 고메즈녀도 그놈의 쫀심이 발목을 잡는지 저기까지 말을 하고 나니 서로간에 아무말없는 침묵이 수초간 지속되었다.
딱히 대화를 하지도 않았는데도 사람의 마음이란게 말로만 전해지는건 아닌지 고메즈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더라. 분명 아까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어서 전화한거일테도 쉽사리 말을 못꺼내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난 고메즈녀의 목소리를 들었을때부터 이미 화가 다 풀린 상태라 결국 내가 먼저 말을 시작했다. ‘내가 그쪽으로 갈까?’라고..
그렇게 서로간에 작은 다툼은 씻은듯 끝이 났다.
고메즈녀와의 전화를 끝내고 나서 난 고메즈녀가 있는 부이비엔 거리로 나갈 채비를 했다.
고메즈녀가 들어오면 바로 잘줄알고 목욕을 한 상태라 머리를 다시 만져볼까도 했지만 그러기엔 너무 귀찮아 대충 야구 모자만 덮어쓴채 옷만 갈아입곤 숙소를 나서 택시를 탄채 부이비엔으로 향했다.
부이비엔에 도착해보니 오랜만에 온 이곳에 적응하기가 난감했다. 도시 전체가 혼란스럽기 이루말할수가 없는 호치민이지만
부이비엔은 그중에서도 유별나게 혼란스러운 곳이라 그동안 난 부이비엔 거리를 의식적으로 피했었고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와보는 것이었다.
길을 따라 무질서하게 다니는 오토바이들과 택시들.. 그리고 위험스레 그옆을 따라걷는 여행자들.. 내가 기억하던 부이비엔의 모습 그대로였지만
이곳도 유행을 많이 타는 곳인지 예전에 내가 기억하던 가게들은 대부분 간판을 바꿔단채 다른 가게들로 변해 있었다.
고메즈녀가 있는 곳의 위치는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는터라 천천히 부이비엔 거리를 따라 걸으며 위쪽으로 올라갔다. 각종 안주류를 파는 아주머니들,
마사지 호객행위를 하는 헐벗은 아가씨들.. 눈에 익은 광경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길을 따라 걸어가다 고메즈녀가 있다는 곳에 다왔을때 즈음 눈을 크게 뜬채 길가 자리에 앉아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살폈다.
고메즈녀 일행의 설명이 꽤나 정확했던지 난 얼마 지나지 않아 고메즈녀를 발견했는데 고메즈녀는 한창 재미난 얘길 하고 있는지 앞에 앉은 일행들과 정신없이 얘길하고 있어서 아직 날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난 원래는 바로 아는채를 하고 그쪽으로 다가갈 생각이었지만 이러고 고메즈녀를 보는 것도 꽤나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고메즈녀가 있는곳을 지나쳐 건너편 가게에 자리를 잡은채 고메즈녀를 훔쳐봤다.
고메즈녀는 정신없이 일행들과 얘길 나누다가 문득문득 내생각이 나는지 고개를 돌려 두리번대며 날 찾아보기도 했는데 건너편 가게에 자리를 잡고 있는 날 발견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시야의 사각지대에 숨어 주문한 콜라를 마시며 고메즈녀를 구경하는 와중에 이제 고메즈녀에게 가볼까라는 생각이 들때쯤 예상치 못한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한눈에 보기에도 한국인으로 보이는 남자 두명이 두리번대며 부이비엔 거리를 따라 내려오는가 싶더니 고메즈녀와 그 일행들을 흘깃 보며 자기들끼리 뭐라뭐라 말을 하기 시작했다.
지네들끼리 손가락질로 고메즈녀와 일행들이 앉아 있는 쪽을 가르키기도 하며 얘기를 나누던 남정네들은 비어있던 고메즈녀 옆쪽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잠쉬 뒤엔 그중 한녀석이 고메즈녀에게 뭐라뭐라 말을 걸기도 했다.
갑작스레 왠 남정네들이 말을 걸자 고메즈녀와 그일행들은 뭔일인가 싶어 그 남정네들쪽을 쳐다봤는데 곧 지네들끼리 뒤집어져라 웃으며 뭐라뭐라 대답을 했다.
말을건 남정네와 남정네의 일행도 고메즈녀와 일행들이 웃으니 따라 웃었는데 멀찍이 떨어져 있는 나로서는 무슨말인지 알아들은순 없었지만 뭔가 재미난 일이 벌어질거 같은게 흥미진진하기만 했다.
얼마지나지 않아 남정네들이 주문한 맥주가 나왔고 남정네들은 맥주를 마시더니 중간중간 계속해서 고메즈녀와 일행들에게 말을 걸었다. 아마도 내가 처음부터 모든 광경을 지켜보지 않았다면 같은 일행인가 착각했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때까지는 무슨일이 벌어질지 몰라 흥미진진했다면 급격한 상황반전없이 시간만 흐르니 슬슬 따분해질 참이었는데 고메즈녀가 옆에 앉은 남정네들과 스스럼없이 대활 나누는 모습을 보니 살짝 질투심이 들기도 했다.
지들끼리 아주 신이 났더라 다같이 건배도 하고 꺄르르대며 웃기도 하고 지네들끼리 핸드폰을 주고 받기도 하고.. 상황이 그렇게까지 진행되니 이거 내가 합류해도 되나 싶더라. 뭔가 합류하면 안될것 같기도 하고..
시간도 이제 꽤 많이 흘러 고메즈녀에게 가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창 고민을 하는 와중에 고메즈녀가 날 찾는지 두리번 대는가 싶더니 핸드폰을 꺼내들곤 뭔가 메세지를 작성하는 모습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내 핸드폰에서 카톡 수신음이 들렸는데 확인해보니 어디냐고 나에게 보낸 고메즈녀의 메세지였다. 난 안그래도 고메즈녀에게 가볼 참이라 고메즈녀에게 거의 다 도착했다는 메세지를 보낸뒤 천천히 고메즈녀와 그일행들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