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베트남 장기출장 그리고 로맨스 #6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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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평소보다는 약간 느즈막하게 눈을 떴다. 고개를 돌려보니 고메즈녀가 쌔액쌔액 숨을 쉬며 자고 있었는데 뭔지 모를 짠한 기분이 들어 감싸 안아주었다.
헝크러진 머리를 정리해 뒤로 넘겨주다 앞짱구라 톡튀어나온 이마가 보여 입을 맞췄는데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술냄새가 물씬 풍기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게 고메즈녀한테서 나는 술냄새라 생각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게 내몸에서 나는 술냄새인지 고메즈녀 몸에서 나는건지 햇갈리더라.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며 멍하니 있다보니 오늘이 고메즈녀가 떠나는 날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거의 이주일간 동거하듯 함께 지내다보니 정이 많이 들었던 아가씨인데 실감이 되지 않아서인지 서운하다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저녁이면 떠난다는 생각보다는 내일 아침에도 이러고 고메즈녀를 품에 안은채 잠에서 깰것 같다는 막연한 희망마저 들었다.
꽤 긴시간동안 그러고 고메즈녀를 품에 안은채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가 얼굴 이곳저곳을 빨기도 하고 깨물기도 하고 입을 맞추기도 했다.
고메즈녀가 잠에서 깨고 나서도 한참동안 침대위에서 뒹굴뒹굴 대다가 일단 전날 과음으로 뒤집어진 속을 좀 풀어줘야 할것 같아서 아침식사를 하러갈 채비를 하기위해 침대에서 일어났는데 온 숙소안이 난리개판이었다.
침대주변으론 전날 사용한 정액으로 범벅된 콘돔과 티슈들이 날라다니고 있었고 거실도 전날 가졌던 술자리의 흔적으로 개판이었다.
다마신 맥주캔과 주전부리들이 그대로 테이블 위에 있었고 가터벨트와 속옷, 베이비오일도 거실바닥에 버려진채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치우긴 치워야 할텐데 워낙 개판이다보니 도저히 시작할 엄두가 안나 일단은 그대로 내벼려둔채 대충 세수만 하고선 고메즈녀와 아침식사를 했다.
고메즈녀가 호치민에서 보낸 마지막날은 둘이 숙소에 틀어박혀 아무데도 나가지 않은채 하루종일 뒹굴뒹굴대며 ㅅㅅ만 했다.
나도 그렇고 고메즈녀도 그렇고 서로의 몸에 눈이 뒤집힌 상태라 숙소안에 처박힌채 실오라기하나 걸치지 않고 나체로 생활을 했는데 그러다보니 시시때때로 흥분이 되었다.
방정리하다 눈맞어서 하고 고메즈녀가 파스타 해준다고 해서 요리하다 또 눈맞아서 하고 욕실에 물받아놓고 반식욕하다 또 눈맞아서 하고..
예전에 친했던 선배가 결혼하고 나니 주말에 제대로 한번에 밥을 먹은적이 없다는 애길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당시 이형이 뭔말인가 싶어 왜그랬냐고 물어보니 밥먹다 형수랑 눈맞아서 ㅅㅅ하느라 차려놓은 국과 밥이 다 식어버려 결국 다시 데워서 먹어야 했다는 대답을 들었는데 뜬금없이 그 선배형 생각이 나더라.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낮부터 고메즈녀의 짐을 싸야지 싸야지 생각을 하긴 했지만 시시때때로 둘이 눈이 맞아 뒹굴대다보니
결국 저녁이 될때까지 짐을 싸지 못했는데 이젠 정말 몸을 일으켜 고메즈녀가 한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될 시간이 다가왔다.
난 몸을 일으켜 여기저기 다니며 숙소를 정리했고 고메즈녀는 침실 바닥에 앉아 짐정리를 했다.
거실정리를 하다 언뜻 짐정리를 하는 고메즈녀를 보니 울컥했는데 괜히 침실로 들어갔다간 울어버릴것 같아 거실정리를 마치고 나서도 거실 쇼파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한국으로 돌아갈 모든 준비를 마친 고메즈녀가 거실로 나왔는데 또 울컥하더라.
틀딱의 눈물만큼 추한것도 없다는 생각에 애써 얼굴을 굳히며 가만히 있었는데 고메즈녀가 오더니 이제 가자고 하더라.
택시를 부른뒤 침실에 들어가 고메즈녀의 짐을 들고 나오는데 고메즈녀가 뭔가를 내게 전해줬다. 선물이라고 하더라.
지금 풀러보지 말고 나중에 집에와서 풀러보라고 했는데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간 또 울컥할것 같아 걍 무심히 박스를 침대위에 올려놓곤 숙소를 나섰다.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면서도 별달리 대화가 없었다. 그냥 손을 잡고 가다가 이따금씩 엄지손가락으로 손에 잡힌 고메즈녀의 손등을 쓰다듬어 보기도 하고 맥락없이 의미없는 얘기만 반복했다.
길이 좀 막히네.. 한국가면 춥겠다.. 밤비행기가 디게 피곤한데.. 등등..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밟고 나서 허영지녀와 만났다. 허영지녀가 한국으로 급하게 보낼 서류가 있다고해서 허영지녀도 공항에 나와있어서 만난거였는데 둘이만 침울하게 있다가 허영지녀를 만나고나니 조금이나마 분위기가 풀렸다.
그날 고메즈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막상 별다른 말도 하지 못했다. 한국가서 보자는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이말이 참 무서운 말이더라.
외국에서야 아무 생각없이 밀회라 생각하고 즐겁게 놀수 있었지만 한국에 가서 만난다는건 뭔가 그 의미가 다른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스티스랑 한국가서 만난다? 안될거야 없지만 어디서 만난다는 말인가? 업소로 찾아가 또 파트너로 초이스를 한다는 말인지 아니면 호스티스랑 따로 만나 연애라도 하겠다는 말인지..
듣는사람의 입장에 따라서는 충분히 오해를 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고메즈녀는 한국으로 떠났다. 뭔말을 해야하나 고민만 하다 결국 별다른 말도 하지 못한채 어리버리대다 그냥 보냈는데 마지막으로 포옹을 하고 나니 고메즈녀가 한마디 하더라.
“오빠 한국오면 같이 식사라도 한번해요”
이장면 어디선가 본듯한 데자뷰같은게 느껴졌는데 이게 언제 겪었던 일인지는 당시엔 아무 생각도 없었다.
허영지녀의 숙소가 내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아 함께 택시를 타고 왔는데 하루종일 뭘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그랬는지
갑자기 허기가 느껴져 고메즈녀와 전날 해장하러 갔었던 진순대에 갔다. 혼자서 순대국밥을 먹기도 뭐해 허영지녀에게 물어봤더니 허영지녀도 좋다고해 함께 가게 되었다.
진순대에 도착해 순대국밥에 소주까지 한병시켜 먹었는데 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받아보니 고메즈녀의 전화였는데 이제 곧 출발할거라고 하면서 이번에 내덕분에 정말 재미있게 놀고 간다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
사실 누구라도 할수있는 듣기좋은 말이었는데 당시엔 그닥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이주일간 연인처럼 들러붙어 함께 지내다 떠나는 마당이 되니 갑자기 정색하곤 모르는 사람 취급을 하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렇다고 열을 낼수 있는 상황도 아니라 나도 똑같이 이번에 너무 즐거웠고 고마웠다는 말을 해줬는데 전화를 끊으며 고메즈녀가 마지막 말을 했다.
“오빠 한국오면 같이 식사라도 한번해요”
허영지녀와 진순대를 나와 택시타고 숙소로 돌아오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했다. 집에 도착해 떠나면서 고메즈녀가 줬었던 선물을 바로 풀러봤는데 넥타이였고 기대와는 달리 편지같은건 들어있지 않았다.
소주도 마셨고 약간 쓸쓸하다는 생각도 들어서 맥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계속 고메즈녀의 마지막말이 머리곳을 맴돌았다.
“오빠 한국오면 같이 식사라도 한번해요”
들을땐 몰랐는데 숙소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전에 사촌동생 선배녀도 한국으로 떠나며 나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이 이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참 말속에 담긴 알듯모를듯한 뜻들이 참 짖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라도 한번 하자라? 난 지금도 이말이 한국의 여성상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여지가 있는듯 없는듯.. 만날듯 말듯..
사적인 관계인듯 공적인 관계인듯.. 특별한 관계인듯 평범한 관계인듯.. 좋은듯 싫은듯.. 이 알쏭달쏭한 모든 감정을 단 한개의 문장으로 함축시켜 놓은게 바로 ‘식사한번 해요’라는 말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