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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홍건적의 미스테리와 주원장(주원수)의 죽음

서라벌Hunter 서라벌Hu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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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jpg

 

 

1, 원사와 신원사를 근거로 중국사를 치장하고 있는 홍건적(고려는 홍두적으로 표기)들의 시작과

발호는 지금의 황하 중류인 하남 동부지역과 산동의 서부지역,강소의 북부지역(패현과 서주지역),

안휘의 숙주,박주,호주(봉양)가 포함된 회수의 중 상류지역에서 시작되고 흥기했다.이곳은 대대로

가뭄과 홍수가 자주 일어나는 곳으로 도둑의 대명사인 양산박의 출현지가 되기도 한다.홍건적들의

모두도 흉년과 기근으로 먹고 살기 힘들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으로 먹거리를 찾으러 남방의

풍요한 지역을 침공하고 유린했다.이들도 아는게 있는지라 척박한 지역으로는 군대나 말머리를 돌

리지 않았다.따라서 홍건적들은 주원장을 비롯해 그 어느 누구도 지금의 요녕성이나 반도는 커녕

황하 북쪽(하북)을 향해 군대(도적떼)를 이동시키거나 진군 시킨적이 없었고 그럴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이들은 오직 집단의 생존을 위해 풍요의 장강유역의 강남을 목표지점으로 삼아 가는곳마다

점령하고 노략질을 했던 것이다.10만 이상의 도적떼들이 몰려 왔을때 과연 남을 것이 있겠는가?

 

2, 그런데 반도의 고려역사를 해설 한다는 고려사를 보면 그게 아니다.대륙중원과 황하 유역과 회수지역,

그리고 장강 유역인 강남 밖을 나가 본일이 없는 그 홍건적들이 무수히 고려를 침공한다는 기사가 있는

것이다.그것도 한두번이 아니고 홍건적이 난동을 부리는 그 시대 내내 줄기차게 고려를 침공하고 조정은

홍건적들을 막기에 노심초사 하고 전전긍긍하는 세월을 보낸다고 쓰여져 있는 것이다.고려를 아주 쑥대밭

으로 만들어 놓은 홍건적이 있고,홍건적들의 침입으로 왕은 마침내 피난이라는 도망까지 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고려사에 쓰여진 고려 침공 홍건적들의 두목이나 괴수들의 활동중 한 장면을 살펴보면,

 

'모거경(毛居敬),심라(沈喇),황지선(黃志善),반성(潘誠),사류(沙劉),관선생(關先生),주원장(주원수)'

등이 고려를 침공한 것으로 고려사는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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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홍건적들의 주력들이 고려를 침공했다고 고려사에 쓰여져 있음에도 이들은 반도의 고려로 올 여유가

없었다고 중국사는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고려사에서 고려를 침공하고 유린했다는 그 시간대에 홍겅적들의

모두는 지금의 장강유역과 강남에서 노략질하기에 바빳다고 중국사가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홍건적의

두목이었던 주원장 당사자도 고려를 침공하기는 했어도 반도의 고려로 간적은 꿈에도 있을수 없다고 수없이

말한다.특히 공민왕 10년(1361:원나라 지정 21년) 10월에 고려를 침공한 것으로 고려사에 기록된 주원장과

반성,관선생과 사류등이 지휘하는 홍건적은 원사와 신원사에 쓰기를 그들은 지금의 강서성 파양호 이북에 있는

구강시(九江)인 강주(江州)에서 같은 홍건적의 부류인 진우량 군대와 싸우기 바빳고 강남지역을 약탈하기에

분주 했었다고 말한다. 이사실 모두는 중국 역사를 거론하는 정사들이 쓰고 있는 실제 기록의 얘기다.

 

 

주원장과 관선생등이 10만의 홍건적을 대동하고 고려를 침공했다는 공민왕 10년(1361년) 11월이 되면 고려의 수도는 말하것도 없고 전국토가 그들의 발아래 놓이게 된다.홍건적들을 막지 못한 공민왕은 결국 가솔들을 대동하고 피난을 가는데 피난길은 임진강을 건너고 광주(廣州)에서 -> 이천(利川)을 거쳐 충주를 경유해 복주(福州)로 도망을 간다. 경성은 홍건적이 수개월 동안 주둔하고 있으면서 말과 소를 마구잡이로 잡아 그 가죽으로 성(城)을 만들고 말로 표현 할수 없을 정도로 고려 백성들을 핍박하고 고통을 주었다고 고려사는 쓰고 있다. 

 

자기들 독립운동 하기에 바빴을 사람들이 어떻게 반도의 개경까지 와서 그 난리를 쳤단 말인가?!

왜 누구도 이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나 진정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가 하나 남았다. 바로 주원장에 대해서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주원장은 이성계에게 목이 잘려죽는다

 

공민왕 10년(1361) 겨울에 홍건적 위평장(僞平章) 반성(潘誠)⋅사유(沙劉)⋅관선생(關先生)⋅주원수(朱元帥)⋅파두번(破頭潘) 등 20만 군사가 압록강을 건너 서북 변방에 함부로 들어와서 우리에게 글을 보내기를, “군사 110만을 거느리고 동쪽 땅으로 가니 속히 맞아 항복하라”고 하였다. 태조(이성계)가 적의 왕 원수(王元帥) 이하 100여 명의 목을 베고 한 명을 사로잡아서 왕에게 바쳤다. 

『태조실록』총서, 공민왕 10년

 

분명 이성계가 쳐들어온 홍건적. 적의 왕인 주씨성의 원수를 목베었다고 하고 있다. 그가 바로 주원장이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수 없다. 분명 역사에 이렇게 쓰여있으니 홍건적의 두목 주원장은 고려에서 이성계에게 죽은것이다. 

홍건적이 고려까지 쳐들어왔다는것도 이상한데 주원장이 이성계에게 붙잡혀 목이잘려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명나라를 건국했다는 주원장은 대체 무엇인가. 홍건적내에 또다른 동명이인이 존재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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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원장이라고 하는 사람의 정체가 매우 의심스럽다. 삽화를 보면 완전히 다른 두사람을 같은 사람이라 한다.

자연스럽지 않은것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명나라의 역사 또한 제대로 살펴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들로 가득하다 인위적인 역사인것이다 

 

즉 짱께들의 명나라와 주원장 역사는 아직도 미완성의... 짱깨들의 희망사항이 반영됀 짜맞추기 무협지란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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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보형님 Bro 포함 1명이 추천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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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 털보형님 21.08.05. 06:01

진짜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옛날 선조님들의 지혜가 깊다는걸 알수있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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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blueskykim 21.08.05. 10:07

주원장이 나름 한족출신 마지막 왕조였던 명을 만든 사람이라... 중국인들이 꽤나 좋아하는 캐릭터란 말이지. (특히 몽고를 몰리치고 명을 세웠으니...)

 

이성계가 주원장의 목을 베어 죽였고 주원장은 가짜다 라고 주장하는 글을 번역해서 중국 웹사이트에 올리면

 

제 1차 사이버 한중전쟁을 개막할 수 있을 듯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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