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하이쏘푸잉 이야기] Apple Snail(사과 달팽이) 이야기
아래는 하이쏘푸잉 이야기 1편의 링크입니다
본 이야기는 액자소설 형식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연관성이 있는 바, 반드시 1편을 먼저 읽어 주기를 희망합니다
https://wolfkorea.com/travel/4683
상당히 긴 글입니다
긴 글이 지루한 형은 리턴을 추천하고
읽을 거리 필요한 형이나, 제 이야기의 끝을 보고자 하는 형들은 긴 호흡하고 쫓아 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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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1. 2011년 12월 푸켓
2. 2012년 10월 로이 엣(ROI-ET)
3. 태국 대학생 봉사단체
4. 애플 스네일과 아이언맨
5. 태국 아닌 태국 이싼, 그리고 방콕 푸잉
6. 사라진 시계
7. 버려지고 남겨진 아이들
8. 뱀과 아이들
9. 폭 우
10. 투문정션(Two Moon Junction)
역시 글을 읽기 전, 빠른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사전 지식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1) 2004년 쓰나미(Tsunami)
(퍼온 사진이다. 쓰레기 같지? 자세히 보면 지옥도다)
2004년 12월 26일 아침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인근에서 발발한 금세기 최악, 최고의 쓰나미 대참사로, 진도 9.0의 지진에 이어 최대시속 500km, 최대높이 100m의 해일이 내륙을 강타했다
피해국가는 인도네시아, 스리랑카, 몰디브,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방글라데시, 미안마, 세이셀, 소말리아, 탄자니아, 케냐까지 큰 피해를 입었으며
부상자 수 파악은 엄두 조차 못 할 지경이었고 사망 및 실종자는 약 28만3천여명, 경제적 손실은 약 107억3천만달러로 기록되었다
특히, 태국의 푸켓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크리스마스와 연말 박스데이휴가를 즐기고자 상주했기 때문에 외국인 사망자 수가 절대적으로 많았다
정부가 파악한 한국인 피해도 사망 12명, 실종자 20여명에 이른다
(여기서 실종자란 아직까지 시신을 찾지 못한 것을 의미한다)
2) 2011년 태국 대홍수
2011년 7월에 시작된 열대성 폭우가 태국 북부와 북동부에 엄청난 양의 비를 뿌리면서 근 3개월 넘게 지속된 태국 대홍수 사태이다
이 기간 최소 570여 명이 사망했으며, 국토의 3분의 1가량이 수몰되었고 수 많은 이재민과 최대 5000억바트(약 20조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방콕까지 수몰되어 전 방콕인 대피령이 떨어졌는데, 이 때 방타이를 계획했던 많은 한국인에게 쇼크와 카오스를 선사했다
이 대홍수로 인해 당시 태국의 HDD(하드디스크드라이버)의 산업단지 역시 수몰되어 전세계 HDD가격이 두배 이상 폭등
SSD 및 플래시메모리가 시장점유률을 높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3) Apple Snail (사과 달팽이)
혹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를 읽은 보았는가?
소설 내용 중, 달팽이 교미를 묘사한 부분이 있는데 실로 파격적이고 애로틱하다
만일 인간으로 묘사했다면 거의 엑스등급 포르노물이다
(베르베르는 분명 우리와 동색인 동발럼일 것 같다ㅋ)
달팽이는 대표적인 자웅동체(암수한몸)의 연체동물이다
즉, 한 개체에 암수 두 역할을 병행할 수 있는 기관이 장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달팽이 두마리는 서로 암수 역할을 번갈아 수행하며 교미를 한 후 둘 다 알을 벤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양성애자(Bisexual Person)를 빗대어 달팽이로 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달팽이 중에서도 태어날 때부터 암, 수가 구별되어 있는 종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Apple Snail... 사과 달팽이다
이는 본 편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며 분명 여자이다
1. 2011년 12월 푸켓
긴 이야기가 되더라도 앞선 이야기를 꺼낼 수 밖에 없겠다
왜냐하면 그래서 달팽이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
(사진 속 나 이외의 한국인은 쓰나미 피해자가 아닌 순수한 선행 목적의 재력가이다
영국인 부부는 현재 남편 사별 후 부인께서 그 유지를 이어가고 있다)
매년 12월, 푸켓에서는
2004년에 발생한 쓰나미로 많은 이가 숨진 것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린다
나는 매년 12월이면 푸켓으로 건너가
나 처럼 극적인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거나, 쓰나미로 가족과 연인을 잃은 이들을 만난다
2011년 그 해에는 태국이 대홍수로 인해 막대한 피해와 고통 속에 있었는 데
이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 보던 나와 이들이 태국을 돕기 위한 작은 후원단체를 결성했다
특히, 우리 모두가 물로 인한 대형 악재에 트라우마가 있었던지라 그 사태를 결코 수수방관하고 있을 수 없었나 보다
나는 항상 태국(정확히 말해서 어떤 가난한 이싼인)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하고 싶어 했고
지금의 나의 삶이
비록 한쪽 다리에 티타늄 합금의 인공뼈를 쑤셔박고 살고 있지만
그의 희생을 통해 얻게된 잉여의 삶이라 여기며 살고 있기에
당연한 듯이 그 단체에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는 단순히 몇 푼 위로금을 전해 주는 것이 아닌
보다 현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방법을 택했다
당시, 태국 및 해외 방송을 통해서 주로 방콕 위주의 피해 상황이 보여지고 있었는 데
사실 심각한 것은 등한시 되고 소외된 가난한 지방이었다
그 홍수 여파로 인해
태국의 쌀 수확량 급감에 따라 2012년 전세계 쌀 국제시가가 10% 이상 상승했다는 것은 그 사실을 방증하는 바로미터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프로젝트를 실행하기로 약조했다
(1) 낙후된 태국 이싼 지역에 '10개의 학교 건립하기'와
(2) 부모에게서 버림 받은 아이들 중 총명한 '남자아이 12명, 여자아이 12명을 선별하여 대학까지 지원하기' 이다
(현재 8명의 여학생만 생존해서 이 악물고 학업에 정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일회성 금전 보다
이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지만, 기회는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한다
지금도 수 많은 태국인, 특히 어린 아이들이 국가에서 그 기회 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2. 2012년 10월 로이 엣(ROI-ET)
첫번째 학교를 건립할 후보지 중에서 로이엣의 한 작은 마을이 선정되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맴버 중 네덜란드인(나는 그를 애칭으로 딩크형이라 부른다)이
태국 여인과 결혼 후 로이엣에 큰 저택을 짓고 살고 있었기 때문에 첫 사업지로 용이하다 판단되었고
나 역시 로이엣이 일부 연관이 있는 곳이라 마음에 들었다
나머지 맴버 모두 그 뜻을 수용했기에 우기가 끝나가는 10월에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첫 학교이니 만큼
전부 건설사를 고용해서 건립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부분 우리도 공사에 적극 관여하기로 했다
그래야 향후 건설비 및 여러 시행착오에 대응할 노하우가 생길테니까...
그렇게 맴버 중, 조를 편성해 나와 딩크형이 처음 3주간 기초공사를 맡게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의 나의 생업을 잠시 미루고
사전 준비중인 딩크형과 조우를 한 후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했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학교가 건설될 부지는 마을에서 무상으로 지원받았고
(허허벌판 부지가 남아도는 곳이 바로 태국 이싼 지역임)
학교가 완공되면 마을에 기증하는 방식을 택했다
복잡한 행정절차는 맴버 중 태국인 재력가가 처리를 했기에 별 탈이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학교를 건설하는 데 큰 비용이 들지는 않았다
인건비가 워낙 싸고 건설에 필요한 자재 비용도 그리 비싸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건설장비였다
포크레인, 불도우저, 트럭 등 이것을 용역하여 투입하기가 정말 힘이 들고 가장 큰 비용이 투입되었다
(이 문제가 얼마나 골치 아팠으면, 나중에 딩크형이 자기 돈으로 사버렸음)
그리고
다른 것 다 감수하더라도 최악의 어려움이 있었으니...
바로 언어의 문제였다
건설 인부 및 관련자와 영어로는 전혀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으니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
이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태국인 재력가가 묘안을 제시했다
"일단 마땅한 통역인은 구해 보겠지만 당분간 대학생 봉사활동 단체를 알고 있는 데, 그들에게 협조를 구하면 어떻겠소?"
"여기로 와줄까요? 그리고 그들이 언어 소통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현재 수업 중일 텐데..."
나는 다소 회의적이었다
"ㅎㅎㅎ... 태국은 대학교 방학이 9~10월 이라오."
"아~ 지금이 방학기간! 하지만 그들을 어떻게 설득할 지...."
그는 알 수 없는 미소와 눈빛으로 나를 잠시 응시하더니 내게 말을 했다
"그것은 내가 알아서 하지요."
"............."
이것이 나와 그녀가 만나게 된 계기가 되었고
나중에 우리가 준비했던 프로젝트가
초심을 잃고 흔들릴 수 있었던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
3. 태국 대학생 봉사단체와 조우
공사가 시작된 후 5일 정도 경과되어서 약속했던 대학생 봉사대가 도착하였다
푸차이 5명 푸잉 3명으로 구성된 총 8명의 인원이었다
그 중 푸잉 1명이 영어에 아주 능통했다
그녀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외모와 170cm에 가까운 키를 가진 다소 마른 학생(?)이었다
그리고 약간 태국스럽지 않은 이질적인 외모에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 피부가 하얀편이고 큰 눈을 가졌으며
냉소적이고 도도해 보이는 미소를 머금고 있는 만큼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간단한 상견례와 점심식사를 함께한 후
15일간 어떻게 협조할지를 상의했다
그리고 숙소는 주변에 마땅한 숙박시설이 없어서
30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지만 딩크형 집에서 단체 기숙하기로 했다
오후 일과가 시작되자 학생들은 잘 훈련된 군인처럼 스스로 일을 분업하여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남학생들은 직접적인 공사현장에 투입되었고
여학생은 주변 허드렛 일과 마을과의 공조 활동에 투입되었다
영어를 아주 잘 했던 그녀는
나와 딩크형의 메신저 및 통역 역할을 해주었기에
이제야 우리의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관철할 수 있는 순탄한 공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특히, 여기에 교육시설이 생기는 것을 알고 모여든 것인지
또는 때때로 나눠주는 간식을 기대하는 것인지
마땅히 놀이감이 없던 아이들이 공사현장 주변에 모여들어 구경을 했다
그래서 여학생들에겐 혹시나 안전사고 대비를 위해 아이들과 놀아주는 보모 역할을 해주 길 당부했다
(딩크형의 저택, 가서 보면 정말로 엄청나게 크다 당시 한화로 약 2억원 정도가 소요되었다고 한다. 뭐...땅값은 싸니까)
4. 애플 스네일과 아이언맨
처음부터 그녀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봉사활동을 왔다면서 수수방관하고, 별로 적극적이지도 않고, 늘 시니컬한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뭐 어쩌겠나?
아쉬운 것은 분명 '나'이다
짬짜미 시간에 그녀와 사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You are a great international native speaker!"
(니 영어 졸라 잘한다)
"Really? That is probably because I had a chance to study abroad early."
(그래요? 내가 조기유학을 할 수 있었기에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Chance... 기회라...
잘난 부모 밑에서 자랐다고 자랑질이군
그녀는 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지금 ooo대학원에서 국제금융(International finance)과 정치사회학(Political sociology)을 공부중이라고 했다
세상 잘난 뇬이었네, 부럽다. 그래서 그리 도도한 척 했나?
"네 이름 부르기 너무 어려워서 자꾸 까먹어"
"Humm... I can fully sympathize with you. Just call me SNAIL."
(그럴만하겠네... 그냥 쉽게 달팽이라고 불러줘요)
"달팽이? 왜 달팽이지?"
그녀는 자기의 본명이 태국어로 '달팽이'와 발음이 비슷했기에
어렸을 때 별명이 달팽이였다는 것과 그로인해 그 후 닉네임이 달팽이가 되었다는 것을 설명했다
아울러 미국에서도 달팽이라 불리었다고 했다
"미스터 까올리, 나도 당신 이름 어려운 것은 마찮가지네요"
"나는 아이언맨이라고 불러줘ㅋ"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 당신 부자에요?"
"아니, 부자는 아니고... 그럴 이유가 있어ㅎㅎ"
"OK, 그럼 이제부터 토니라고 부를께요"
그렇게...
그 후부터 나는 토니가 되었고 그녀는 달팽이가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나의 못난 행동이었지만
차가울 정도로 뾰족한 그녀의 태도에 내심 부아가 끓었는지
아니면 시비를 걸고 싶었는지, 가시돋힌 농담을 툭 건네고 말았다
"달팽이라 불리운 것을 보니, 혹시 당신 양성애자(bisexual)?"
그녀는 무섭게 나를 노려보며 악다구니를 뱉아내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Never! This is why I hate Fucking Guys!"
(절대로 아니거든! 난 이래서 개같은 사내넘들을 증오해!)
그 후로 그녀는 업무적인 대화를 제외하고는 나와의 사적인 대화채널을 닫아버렸다
마치 달팽이가 자신의 집에 꽁꽁 숨어버린 것 처럼...
5. 태국 아닌 태국 이싼, 그리고 방콕의 푸잉
대학생 봉사단체의 투입 이후 모든 작업은 순조로웠다
특히, 달팽이의 역활이 정말 컸다
비협조적인 듯, 무심한 듯 행동했지만 우리의 스피커로써의 자기 역할은 분명히 완수해 주었다
나는 냉소적이고, 마지 못해서 참가한 듯한
그리고 타인을 무시하는 듯한 달팽이의 태도가 솔직히 언짢았다
이왕 함께하기로 결정했다면
조금 웃으면서 즐겁게 생활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뭐가 항상 그리 못마땅한지...
또한, 같이 봉사활동에 참여한 대학생 무리와도 별로 친한 것 같지 않기에 더더욱 의아했다
아니면 일부로 거리를 두려고 하거나 그들이 달팽이를 조금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할 때도 깨작거리기만 할 뿐
외국인인 나 보다도 이싼 음식을 먹는 것에 더욱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외국생활을 오래해서 그런 것일까...?
폭폭(PokPok)이라는 이싼 음식이 있다
쏭땀 보다 더 진하고 역한 젖갈 소스에 향채소와 민물게, 고추, 라임 등을 버무려서, 그 국물에 쌀국수를 넣어 먹는 이싼 음식인데 나 역시 처음엔 적응하기 매우 어려웠던 음식이다
(이것은 파파야 폭폭, 그나마 달적지근해서 삼키기 수월하다)
어느 날, 일과를 마친 후
딩크형 숙소에 전원이 모여 저녁식사를 함께할 때
식사를 제공하기로 계약한 마을 식당에서 저녁식사 메뉴로 폭폭을 배달해 왔다
달팽이는 이 날 저녁도
쏘스없이 맨 쌀국수와 생채소만 조금 뜯어 먹다가 이내 젓가락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맹물만 마셨다
'......................'
'뭐 어떠냐, 공사만 잘 끝날 수 있게 도와주면 그 뿐이지'
그렇게 그녀에게 마음쓰지 않기로 했던 나 였지만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그녀의 마른 몸매가 더욱 야위고 약해지는 것이 너무 안쓰러웠다
"잠깐 나하고 얘기 좀 할까?"
나는 달팽이를 나의 숙소이자 집무실로 사용하는 곳으로 불렀다
그리고...
한국에서 준비해 왔던 컵라면, 햇반, 참지캔, 볶은 김치, 카스타드케익 등 과자류를 꺼내어 그녀 앞에 놓았다
그녀는 잠시 그것들을 응시하다가 늘 그렇듯 경직된 말투로 말했다
"아니요, 나는 괜찮아요, 신경쓰지 마세욧!"
"Never!! 너는 지금 상태가 좋지않아. 만일 이것을 먹지않는다면, 나는 너에게 집에 돌아가라고 할꺼야"
그리고 컵라면과 따뜻하게 데운 햇반 등등 그녀가 먹을 수 있도록 준비해 줬다
달팽이는 여전히 머뭇거리다가
한 술떠서 입에 맞는 것을 확인하더니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배가 고팠겠지... ㅠ
"미안해, 내가 정식으로 사과할께"
".......????"
"너에게 심한 말을 했어.
너와 친해지고자 한 말인데, 내가 어리석었고 너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정말 미안해..."
"............."
그녀의 눈이 흐려지는 것을 보았다
달팽이는 그렇게 이싼에서의 진짜 첫 식사를 했다
6. 사라진 시계
그 이후 달팽이는 조금 더 편안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다
여전히 도도해보이는 미소는 그대로 였지만...
그냥 자존심이 남 보다 쌘 여자였을 뿐인데
내가 괜한 선입견과 좁은 시야로 그녀를 포장했던 것이 아니었나 반성도 했다
그 후에도, 매일은 아니었지만
다른 학생들과 차별 대우한다는 말이 돌까봐 조심하면서
달팽이가 먹기 힘들어 하는 메뉴가 나오면
그녀를 불러서 이것저것 음식을 챙겨 주었다
"토니, 당신은 안먹어요?"
"난 괜찮아, 나는 너 보다 이싼 음식을 잘 먹거든ㅎㅎ"
우리는 사적인 대화도 나누면서
조금씩 그렇게... 서로에게 가졌던 벽을 허물어 갔다
앞서 말했듯
공사 주변에는 항상 구경꾼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도 간혹 보였지만 주로 어린 아이들이었다
여학생들이 돌아가면서 그 아이들과 놀아 주었는데
조금 마음을 연 달팽이 역시 스피커의 역활이 없을 땐 그 일에 합류했다
그것만 해도 큰 변화였다
한번은 달팽이가 이싼 아이들과 놀아줄 순번이었는 데
한 아이가 이싼동요(?) 인지 노래를 불렀다
그 때...
달팽이가, 그 도도하고 냉정해 보였던 달팽이가
아이의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며 춤을 추었다
그 것은 춤이라기 보단, 뭐랄까...
좌우로 몸과 머리를 흔들어 대는
흡사 오뚜기 같았다
오뚜기...
키 크고 삐적 마른 몸매의 오뚜기군ㅋㅋ
그녀의 어색한 춤동작을 멀리서 지켜보던 나는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앞으로 별명을 바꿔야 겠다. 오뚜기로'
그녀는 내가 지켜보는 것을 알아챘는지 뒤돌아 나를 바라 보았다
그리고 어색한 듯, 처음으로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 (^_^) -----
학교 건설의 최고 난관은 바로 물, 용수였다
공사에 사용할 물도 그렇거니와
앞으로 학교가 정상 가동되더라도 이 급수시설 문제를 해결하지 못 한다면 운영에 큰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었다
마을에서 제공받은 땅이
거주지역에서 동떨어진 버려진 곳이라 상.하수도 시설은 꿈도 못 꿨다
전기는 차후에 끌어 오거나 미니 발전기를 설치한다고 해도, 급수시설을 해결 못한다면 말짱 꽝이 었다
처음엔 지하수를 파볼까 했는데, 이 곳은 충분한 수맥이 없어서 불가능했다
정말 난제였다
나와 딩크형은 초기 예산을 오버하더라도 물탱크와 적절한 정수시설을 추가하기로 결정하고 모든 맴버에게 그 사실을 통보했다
그런데... 물은 어디에서 끌어오지??
그 해답은 구경꾼인 아이들이 알고 있었다
나와 달팽이 그리고 공사 관계자는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인도를 받아서 물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7~8분 남짓 숲길을 걸으니
제법 맑은 물이 흐르는, 강이라고 하기엔 작고 시내라고 하기엔 큰 물가에 도착했다
(편의상 작은 강이라고 하겠다)
눈대중으로 봐도 물탱크를 채우기 위한 충분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은 우기가 되면 큰 비가 온 후 이 강이 커지고 건기에는 차츰 사라진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네는 여기서 목욕도 하고, 수영도 하고, 물고기도 잡고, 개구리도 잡는다고 했다
나는 건설 관계자와 깊이가 어느정도 인지 확인하기 위해
아이들을 따라서 강물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달팽이에게는 너는 안따라 와도 되니까 그냥 물가에 있으라고 했는데
그녀는 자신도 따라 들어가겠다고 과욕(?)을 부렸다
나는 모자를 벗어, 그 안에 혹시나 얼룩질까봐 가죽끈 시계를 풀은 후에 지갑과 함께 담았다
그리고 주변에 알짱거리는 어린 꼬맹이들에게 이 모자를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그녀 역시 자신의 시계를 풀더니 그 모자안에 함께 넣은 후 내 뜻을 꼬맹이들에게 전달했다
(비싼 시곈가...??)
우기로 인해 불어난 그 작은 강은 생각 보다 깊었다
최고 깊은 곳은 성인 남자의 허리춤정도였다
물탱크 건설 관계자는 샘플로 사용할 물을 담고 치수를 잰 후에, 이 곳에서 물탱크를 충분히 채울 용수 확보가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나는 그 사실에 만족했다
그 때, 우리를 따라왔던 아이들이 가느다란 작대기를 들고서
우리주변 상하류 쪽으로 가더니 물을 향해 작대기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저 아이들이 왜 저러지...?
나는 궁금증을 가지며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물가로 귀환했다
그런데...
시계와 지갑을 다시 챙겨 놓은 모자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주변을 찾아 보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나중에, 오직 모자만 조금 떨어진 숲속에서 발견됨)
우리는 모자를 지켜달라고 부탁한 아이들을 찾아 보았는 데
그 꼬맹이들 역시 모자 지킬 생각을 까맣게 잊은 채, 강물에 들어가 오빠, 언니들 흉내 내면서 작대기로 물을 내리치며 놀고 있었다
귀중품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모두가 신경을 못 쓴 사이에 누군가 몰래와서 훔쳐간 것이었다
꼬맹이들은 우리가 부른 후에야
자기들에 부여되었던 임무를 다시 상기하며 바쁘게 모자를 찾아 다녔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였다
나는 무척 난감했다
지갑에는 비상금 약간 정도만 있었고
이미 분실한 나의 시계야 어쩔 수 없었지만
달팽이의 시계가 함께 분실 된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녀 역시 당황한 눈치가 역력했다
이런... 어쩌지...?
7. 버려지고 남겨진 아이들
작은 시골마을에
아이들 실수로 인해 귀중품을 분실했다는 사실이 빠르게 퍼졌다
몇몇 마을 사내들이 공사장에 찾아와서
해당 사건에 연류되었던 아이들을 끌어내 거칠게 닥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험악해진 분위기는 흉폭한 물리력이 동원되기 시작했고
어눌하게 사건 설명을 하던 아이들은 공포에 질려서
해당 꼬맹이들을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새파랗게 질린 꼬맹이들이 거친 사내들 손에 멱살잡이로 끌려 나왔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대여섯의 꼬맹이들이 발로 차이고, 뺨이 후려갈겨지고,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급기야 주변에 산재했던 각목을 들고 아이들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공사장이 아이들 울음소리와 비명소리, 당시 아이를 돌보던 달팽이의 절규로 가득 찼다
나는 경악하며 그 현장으로 내달렸고
사내의 손에서 각목을 빼앗아 멀리 던진 후 아이들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흥분한 사내들은 멈추질 않았다
그들은...
저것들은 더러운 쓰레기이고, 애미 애비없이 자라서 버릇 없고 거짓말에 능숙하다며
마을의 골치덩어리이자 수치라면서 꼬맹이들을 비난했다
그리고 마을 위신에 심각한 피해를 주었다고 말했다
분명히 저것들이 숨겨 놓고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지껄였다
그리곤...
공포에 떨면서 내 다리를 잡고 있던 여자아이 머리카락을 잡아채서
발로...
배를 걷어 찼다
아이가 '꾸룩~' 외마디 비명과 함께
멀리 튕겨져 나가서 배를 안고 기절했다
"이 미췬 새끼야~~~!!!"
나는 격노하여 그 사내놈 얼굴을 후려갈겼다
그 순간
술에 취했는지 아니면 약에 취했는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던 눈을 부라리며 나머지 놈들이 나를 덥쳤다
집단폭력과 광포함의 대상자가 나로 바뀐 것이다
쓰러진 나를 향해 거친 발길질이 계속해서 들어왔다
멀리서 관망하던 인부들과 대학생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왔다
뒤늦게 연락 받고서 딩크형도 달려왔다
나를 감싸던 달팽이도 머리를 발로 걷어 차였다
그 때였다
달팽이가 뭐라뭐라 빠르게 악다구니를 내질렀다
알아 들을 수 없는 태국어에 그녀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녀의 격분한 외침에 그 사내들은 폭력을 멈췄고
계속된 그녀의 내지름에 주춤주춤 하더니
자기들끼리 몇마디 쑥덕거린 후 비실비실 사라졌다
아니... 도망쳤다
매맞은 아이들에게 응급조치를 해주고
심한 아이 한명은 병원으로 운송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다
만일 계속 맞았다면...
뒤늦게 도착한 딩크형의 SUV(픽업트럭)에 실려진 나는 달팽이의 부축을 받아서 나의 집무실(숙소)로 돌아왔다
잠시 숨을 돌리고 몸을 닦은 나는
그 광포했던 사내들의 폭력을 멈추게 한, 달팽이의 말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입가에 옅은 미소만 번질뿐... 대답하지 않았다
"당신 정말 무모하군요, 자기가 정말로 아이언맨인줄 아나봐?"
"어린 꼬맹이가 걷어차여서 마치 개구리 처럼 퍼지는 것을 보니까, 순간 이성을 잃었어"
나는 그냥 웃었다
그녀가 사태를 해결하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 병원 신세였을 것이다
"나는 이번 봉사활동이 별로 내키지 않았어요"
"......... 왜???"
"당신네들이 하는 일이 가식적일 거라 여겼고, 분명 선행 뒤에 목적이 숨겨져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태국인들은 지금까지 그런 것을 숱하게 봐왔으니까..."
"............."
"하지만, 당신의 진지함을 보고서 내 예상이 틀린 것 아닌가 계속 흔들렸죠
그리고 오늘, 확실하게 내가 잘 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어요"
"............."
"죄송해요. 나 정말 사과하고 싶어요"
"아니야, 나라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을 꺼야. 그리고 오늘 정말 고마워"
"궁금해요. 무엇이 당신을 태국, 여기 이싼땅으로 오게 했는지..."
"............."
"나는 나와 관계된 사람 이외에는 잘 설명하지 않았던 나의 과거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었다
달팽이는 충분히 공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 가족을 도우면서 당신은 마음에 평화를 얻고 자유로워졌나요?"
"아직 모르겠어. 그리고 내가 해야할 일이 더 있을 것 같아서 여기까지 온 것이고..."
"그리고요?"
"나 역시 나약하고 이기적인 인간이었기 때문에, 가끔은 이제 그만해도 되지않을까... 만족감에 사로잡힐 때가 많아"
"............."
"하지만... 그런 생각이 나를 지배할 때면, 이 녀석이 욱씬거리고 아파와
그리고 다시 나를 일깨워서 바로 세워주고 있어"
나는 그 날의 고통을 대변하 듯, 수십개의 철심과 쇳덩어리가 빼곡하게 박혀있는 나의 다리 한쪽을 가리켰다
"그래서 당신은 항상 긴바지를 입었군요. 나 한번만 보여주면 안돼요?"
"이걸 봐서 뭐하게, 나 창피해. 흉칙해"
나는 커다란 수술자국과 화상, 곪아터져서 시커멓게 괴사했던 나의 다리를 차마 보여줄 수 없었다
늘 창피했고 부끄러웠다
이것은 나에게 그날의 고통을 다시 상기시켜주는 고마운 존재였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감추고 싶던 나의 흉칙한 치부였다
그래, 문신...
나에게 결코 사라지지 않을 흉칙한 문신이었다
그녀는 더이상 강요하지 않았다
달팽이가 당시에 벌어진 일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인민재판 처형장 처럼 지목되어 끌려나온 꼬맹이들은 이 동네 가장 불쌍한 아이들이었다
부모에게 버림 받고서 조부모 또는 친족에게 의탁되어진 아이들
아니면, 그 마저 여의치 않아서 남에 손에 맡겨진 아이들이었다
순간적인 오판을 사랑으로 여기고 만들어진 아이들
이성적으로 완벽하지 않을 청소년 시기의 부모에게서 만들어진 아이들
욕정을 숨기고 다가온 사내들 속삭임을 사랑이라 여기며 만들어진 아이들
책임지지도 않을 개 쓰레기같은 존재들의 정액 속에서 살아 남은 구차한 아이들
버리고 사라진 애비와, 분유값 벌어 오겠다며 집 나가서 연락끊은 어미의 죄 값을...
고스란히 아이들이 감내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겐 아무런 죄가 없는 데 부모의 형벌은 아이들이 받고 있구나!
결국, 그것들을 자행했던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의 치부를 감추기에만 몰두하면서 오히려 손가락질 해대겠지?
그리고 아이들 역시, 대물림되는 악행으로 지 부모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그것을 카르마라 여기면서 스스로의 안위를 찾겠지?
안타까움의 눈물이 나의 뺨을 타고 흘렀다
"어서빨리 학교를 만들고 싶어
만일 그래서... 그것을 기회삼아 한명이라도 더 올바른 판단의 성인으로 자랄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
"그래요, 우리 어서 학교를 만들어요"
"그리고 시계있지? 내가 새시계로 한개 사줄께, 괜히 나 때문에 미안하다"
"정말? ㅎㅎㅎ.... 괜찮아요"
그녀가 어두어지는 창가에 앉아 미소짓고 있었다
8. 뱀과 아이들
달팽이가 무슨 말을 했기에 그 광포했던 놈들이 기가 죽어서 살아졌는지 많이 궁금했다
그녀는 끝까지 답변하지 않고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나중에 다른 대학생에게 물어 봤는데...
아마도 그놈들은 지금쯤 마을에서 멀리 도망쳐 숨었거나, 피떡이 되도록 맞아서 반병신이 되었을 것이라 했다
그리고는 계속 낄낄거리며 웃기만 했다
'뭐야, 겁나게... 조폭의 딸인가?'
공사가 진행되는 어느날 오후, 비가 잠시 내렸다
모두가 진흙과 먼지, 땀, 빗물에 곤죽이 되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샤워를 하려면 차를 타고 30분은 이동해야 하는데...
우리 전부는 아이들이 알려준 작은 강에서 대충 목욕을 하고 가기로 했다
학생, 인부 할 것 없이 전부 강가로 가서 진흙으로 곤죽이 된 몸을 씻었다
학생들도 매우 좋아했다
옷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가 몸만 털어도 개운하고 시원했으며 빨래도 겸할 수 있었다
젖은 옷은 달리는 픽업차 화물칸에 앉아있으면 금새 말라버리니 일석 삼조였다
그들은 수영도 즐기면서 아주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동안 구경꾼인 아이들이 두배로 늘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오고, 기존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찾아오고...
아이들은 또 강 상하류로 가서 작대기로 물을 치기 시작했다
나는 궁금해서 왜 그렇게 하냐 물어 보니, 그것은 뱀이나 기타 해로운 것을 미리 쫓아내기 위한 것이라 했다
태국에는 독사가 많은 데 수영할 동안 물리지 않도록 미리 주의를 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안전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이 만들어낸 궁여지책!
이 아이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스스로 적응할 수 있구나...
나와 학생들도 아이들이 수영할 동안 주변에서 작대기로 물을 쳐 주었다
또한, 강어귀에 목욕 후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작은 텐트도 한개 설치했다
앞으로 매일 일과 후엔 여기로 목욕 겸 물놀이를 하러 올 것 같다...
9. 폭 우
(다들 노가다 중이라, 대충입고 살았다)
일정을 4일 남겨놓은 날...
그날도 어김없이 각자 본인의 역할을 마친 후, 노을지는 이싼의 멋진 하늘을 감상했다
그리고 삼삼오오 더럽혀진 몸을 씻기 위해 강가로 향했다
나는 행정적인 처리 문제로 전화를 하느라 뒤처졌고
나의 스피커 달팽이와 그녀와 함께 움직이는 여학생들, 그리고 나를 따라다니는 졸개 아이들 몇명이 공사장에 남아 있었다
시골은 금방 어두워지므로, 우리는 각자 랜턴 한개씩 손에 쥐고서 뒤늦게 강가로 향했다
스멀스멀 어둠이 우리 뒤를 따라서 조금씩 몰려오고 있었다
아이들과 우리는 번갈아 작대기로 물을 치면서 더러움을 씻었다
그 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제법 굵어지려는 것이 곧 장대비로 변할 것 같았다
태국의 스콜...
작은 강은 비가 오면 순식간에 불어난다
우리는 서둘러 강에서 나와 재빨리 강을 떠났다
한소끔 쯤 걸어왔을 때, 한 아이가 자기 모자를 두고 왔다며 돌아가겠다고 했다
'모자... 매번 모자가 문제군'
내가 쓰던 야구모자가 마음에 들었는지 계속 벗겨서 자기가 써보기에, 아이에게 선물로 주었던 그것이었다
새 것을 줄테니 그냥 가자고 해도 울고불고 막무가내였다
위험하다...
나는 반드시 찾아서 다음날 주겠다고 약속한 후 빨리 먼저 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뒤돌아서 다시 강가로 향했다
혼자가면 위험하다고 내 뒤에서 소리치며 달팽이가 나를 쫓아왔다
괜찮다, 그냥 먼저 가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아이들은 다른 두 여학생이 인솔해서 출발했고, 우리는 어두워진 숲길을 랜턴 빛에 의지하며 다시 강가로 갔다
불어나고 있는 강물 옆 덤블가지에 모자가 비를 맞으며 걸려있었다
나는 달팽이에게 랜턴을 빛추어 달라고 말한뒤 진창으로 변한 땅바닥을 조심히 걸어가
모자를 움켜쥔 순간, 그대로 미끄러져서 자빠지고 말았다
뒤에서 달팽이가 비명을 지르며 뛰어왔다
나는 무릎까지 푹푹 꺼지는 진흙바닥을 그녀의 손에 의지해 빠져나왔다
넘어져서 조금 민망했는데, 달팽이는 아이 모자를 찾아주어 다행이라면서 미소로 나의 창피함을 가려주었다
우리가 길을 되돌아 갈 그때...
내리던 비가 폭우로 변하며 무섭게 쏟아졌다
랜턴을 빛추어도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넘어지는 바람에 온몸에 묻은 진흙이 다 떨어져 나갈 정도였다
우리는 길을 찾기에는 무리라고 판단, 일단 폭우를 피하고자 임시 설치했던 텐트를 뽑아내어 물가를 벗어났다
그리고 안전한 곳에 텐트를 설치한 후 그 안에 몸을 구겨 넣었다
10. 투문정션(Two Moon Junction)
거센 장대비 소리가 텐트를 때리자 천막이 시끄럽게 울어댔다
넘어진 덤블이 가시덤블이었나 보다
달라붙은 가시들이 엉덩이와 다리를 계속 찔러대어 아프고 신경쓰였다
달팽이는 독풀일지 모른다고 어서 벗으라고 했다
괜찮다고 해도 계속 벗으라고 다그쳤다
(사실 찔린 곳이 계속 가렵기는 했다)
나는 그렇게 바지를 벗었고
그녀 앞에서 내 치부와 같은 다리의 흉터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다
그녀는 말없이 내 흉터를 보다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이야기 했다
"이게 무슨 창피라고 자꾸 가릴려고 했죠? 봐, 별 것도 아니네!"
".................."
"내일부터는 반바지를 입어요, 태국은 더운 곳이야.
당신은 다리에 흉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에 흉터를 가지고 있군요.
왜 마음에 문신을 새기고 있죠?"
"그럴지도....."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우리는 어색한 침묵을 피하기 위해서인 듯
서로가 랜턴을 빛추며 내 바지의 가시풀을 찾아 뽑기 시작했다
좁은 텐트위로 계속 폭우가 쏟아지고
우리는 할 말이 없어서 가시풀 찾기만 했다
그녀가 먼저 말믄을 열었다
"Ha Ha, it's like searching for hidden pictures!"
(ㅋㅋㅋ 뭐야, 마치 숨은 그림찾기 놀이 같잖아!)
"............."
(나, 뻘쭘)
우린 다시 무안함으로 가시풀 뽑기에 열중했다
................
둘 사이의 적막감으로, 폭우에 우는 천막소리가 더욱 요란했다
빤스만 입은 남자와 비에 쫄딱 젖은 여자
그리고 묵묵히 바지에서 가시풀을 찾는 남녀...
나는 이 상황이 너무 웃겨서 미친 듯이 웃었다
그녀도 내가 왜 웃는지를 아는 지, 따라서 웃었다
한 1분은 웃었나 보다
그리고
다시 숨은 그림찾기를 시작했다
(아... 내가 병신 쪼다인가? ㅠㅠ)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내가 양성애자냐 물어봐서 너는 화가 많이 났었니?"
나는 적막감을 깨고자 이 말을 던졌다
"이미 잊었어요, 당신은 내가 양성애자로 보이나요?"
"아니.... 너는 결코 양성애자가 아니야.
멋지고, 지적이고, 예쁜 여자일 뿐이야"
"하하하, 이것을 언제 알았죠?"
"처음부터..."
"역시... 내가 매력적이긴 해 ㅎㅎ"
"Apple Snail(사과 달팽이)라고 들어봤니?"
"아뇨, 나는 실제 달팽이엔 별로 관심이 없어서..."
"달팽이는 자웅동체의 동물이지만, 오로지 딱 한종만 암수가 구분되어 태어난다고 해"
"그게 사과 달팽이?"
"응, 넌 그냥 달팽이가 아니라 사과 달팽이야ㅎㅎ"
그녀는 아무런 말 없이 나를 향해 웃어주었다
랜턴 불빛에 비추어진 그녀의 비에 젖은 검은 머리가 무척 탐스러워 보였다
일반적인 태국인 보다 흰 피부를 가진 그녀이지만, 10여일 지속된 봉사활동에 노출된 피부가 꽤나 그을려 있었다
하지만 빗물에 젖어 달라붙은 흰색 티셔츠를 뚫고서, 그녀의 속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집에서 살짝 몸을 내민 달팽이 처럼...
검은 머리 보다 더 검고 큰 그녀의 눈동자가 어둠을 이기고 반짝거렸다
그녀는 숨은 그림찾기 하던 바지를 살짝 치우고, 나의 다리의 흉터와 수술자국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여기... 지금도 아파요?"
"날씨가 궂은 날에 가끔씩..."
그녀는 허리를 굽혀 나의 흉터에 입을 맞췄다
"지금도 아파요?"
"............. 아파"
그녀는 대범하게 나의 팬티를 내리고
나의 그것을 입에 물고 혀를 굴렸다
"이래도 아파요?"
"안 아파...."
(아니, 더 아파서 터지겠오 ㅠ)
그녀가 양 팔로 내 허리를 감고 기대어 왔다
"그러면 이제 나를 아프지 않게 해줘요"
나는 잠시 망설이다 숨을 고르고는
그녀의 얼굴을 들어 키스를 했고
그녀는 눈을 감은채 손에 쥐고 있던 랜턴의 불을 껐다
어두움 속에서
오직 서로를 찾는 손길만으로 모든 것을 감지할 수 밖에 없었다
새차게 천막을 울리던 빗줄기가 점차로 약해지더니, 이내 그쳤다
천막 주위로 비가 멈추었음을 알리는 풀벌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강가의 풀숲을 조용히 다니는 작은 생물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도 들려 왔다
때마침, 강가에 사는 개구리들이 요란하게 울어 주면서
점점 거칠어 지는 그녀의 숨소리를 부끄럽지 않도록 막아주었다
그리고
구름을 벗어난 이싼의 달이
일렁이는 강물에 반사되면서 두개의 달을 변하더니
천막 안을 부드럽게 비추어 주었다
마치...
지금 이순간, 누구보다 가장 아름다워야 할
한 여자의 모습을 절대로 잊지말라고 하는 것 처럼...
그렇게 그녀는 나의 사과 달팽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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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피곤하네요
침대에 누워 글 쓰는 것도 힘들고, 과거를 회상하는 것은 더욱 힘들고...
이 것도 너무 긴 글인지라, 달팽이에 대한 마지막 스토리와 그녀의 정체는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끝내겠다는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하군요
언제나 그러하듯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든 본인의 의지입니다
존중합니다
그리고 댓글에 답을 못하더라도 이해를...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일부 내게 없는 기록사진은 퍼왔음을 알립니다)
작가로 데뷔해도 될듯한 글솜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