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하루에 시 하나 004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백석)
나는 이 마을에 태어나기가 잘못이다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나는 무서워 오력을 펼 수 없다
자 방안에는 성주님
나는 성주님이 무서워 토방으로 나오면 토방에는 디운구신
나는 무서워 부엌으로 들어가면 부엌에는 부뜨막에 조앙님
나는 뛰쳐나와 얼른 고방으로 숨어 버리면 고방에는 또 시렁에 데석님
나는 이번에는 굴통 모퉁이로 달아가는데 굴통에는 굴대장군
얼흔이 나서 뒤울안으로 가면 뒤울안에는 곱새녕 아래 털능귄
나는 이제는 할 수 없이 대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대문안에는 근력 세인 수문장
나는 겨우 대문을 삐쳐나 바깥으로 나와서
밭 마당귀 연자간 앞을 지나가는데 연자간에는 또 연자당구신
나는 고만 디겁을 하여 큰 행길로 나서서
마음 놓고 화리서리 걸어가다 보니
아아 말 마라 내 발뒤축에는 오나가나 묻어 다니는 달걀구신
마을은 온데간데 구신이 돼서 나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무섭다는 말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시를 찾아보기 참 어려운데, 전혀 무섭지가 않은 시다.
말 그대로 마을에는 오만 귀신이 다 살고, 그 귀신들이 내가 살고 있는 집안 곳곳에 있다고 생각하면 섬뜩할 만도 한데, 사실은 이들이 마을과 내 가족의 역사와 함께 숨 쉬어 온 수호신 같은 존재들이라서.
물론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에서는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방만하게 굴지 못하게끔 하는 공동체 특유의 눈초리와, 그래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보수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라면 그건 그대로 무서운 것이 맞을테지만. 그래도 그냥 귀신이라는 말과는 모순되는 포근함이 느껴지는 시라고 생각해.
어렸을 때는 귀신 얘기를 정말 너무 좋아해서 친척들 친구들이랑 모이면 늘 무서운 얘기를 했었는데, 이제는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걸 알아버린 나이가 됐다. 어렸을 때의 내가 생각나서, 나는 어린이날을 즐길 수 없는 나이가 됐으니. 어린이날 하루 전 날을 기념하며 이 시를 올려본다.
댓글 8
댓글 쓰기온동네가 귀신이네, 나는 갈곳이 없네 또한 나도 그냥 떠도는 귀신인가
신선한 감상이네 브로
그치 인간과 귀신의 경계가 희미하다고 생각하면, 약간 무상하게 살아가게 되네
그래도 오늘 하루도 힘내보자~!
감성충만이네 아침부터👍
후 통달해야하는데
좋은시 소개해줘 고마워 브로. 비도오고 딱좋은 때 적절한 시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좋은 시네요
경건해지는 아침 ^^